「황금빛으로 뒤덮인 장막」
“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
외관

학치킨님(@hakbin) 커미션
몇 번 만지는 것으로도 붕 떠버리고 마는 연한 주황빛의 얇은 머리칼은 어깨 조금 위에서 한 번 잘려있으나 그 아래로 여러 가닥의 땋은 머리가 검은 끈과 함께 길게 내려왔다. 말고도 왼쪽 옆머리만 길게 자랐는데, 이건 땋지 않고 비즈로 한 번 고정해 두기만 했다. 제각기 다른 길이의 머리칼은 전체적으로 보면 어수선하지만, 머리를 잘 만지지 못하는 아이에겐 이게 최선일 따름이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오른쪽 귀에 착용한 보조 도구는 주변에 장애물이 있는지, 사람이 많은지 등을 알려주어 아이가 어딜 다니든 그 걸음이 막히지 않도록 도왔다.
눈가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길게 자란 앞머리 안쪽에는 까만 안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별 특색은 없지만 빛도 투과되지 못할 듯한 어두운색은 머리카락이나 창백한 피부와는 대조됐으므로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곳이기도 했다. 모든 기억을 되짚어도 벗은 기억이 없다 말하는 아이는 스스로도 그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는 듯 모든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아마 홀로 있을 때조차 그를 벗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모양. 사실 모든 기술이 발전된 낙원에서 눈을 가리는 것쯤이야, 별 흠도 되지 않았고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으니, 변화도 없다. 그래도 시선을 맞추는 구색이라도 흉내 내듯 대화할 때면 고개를 들어 상대를 향하며, 이따금 안대 아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려내기도 했으니, 대화가 일방적이라는 느낌은 그리 들지 않았다.
모자를 챙겨 다니긴 하지만, 쓰게 되면 얼마 가지 못해서 머리카락이 자유 의지를 가지는 모양새가 되어 잘 쓰지 않는다. 그 탓인지 가끔은 떠난 자리에 모자만 남겨져 있을 때가 있다. 교복은 단정하게 입긴 하지만, 머리카락, 어깨와 장갑, 치마, 신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자리한 끈이나 리본 탓에 시선이 분산되곤 한다. 사실 리본과 끈이 있는 곳보단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 그에 대한 효용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아마 단순한 취향인 듯. 그 외의 특징이라면 길이가 차이 나는 치마 길이 정도.
꼽아보면 특징은 여럿 있으나, 존재감이 강하진 않다.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움직이는 데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그 중심보단 구석에서 그 분위기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으니 한 번 시선을 두기 전까지 다른 이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음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의 행보는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것들이 아니었으니 아이는 그저 살짝 웃으며 다른 곳을 향해 사라졌다.
이름
아디넬 센솔 / Adiner Sensoar
나이
14세
성별
여성
신장/체중
146cm / 32kg
메모리
메모리 : 제 6사도 피들러
동화율 : 19%
능력 : Aurelane
족쇄로 이어진 대상의 일부를 잠식, 흡수하여 봉인한다.
과거에는 상대의 능력이나 사상, 기억부터 신체 일부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철저히 흡수하여 봉인할 수 있었으나 다른 노아들과 마찬가지로 메모리 손상이 누적되었으므로 그러한 무형의 것은 어쩌다 겨우 한 번쯤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때문에 현재는 상처나 후각, 청각처럼 감각 등 물리적인 것들을 주로 봉인한다. 상처의 경우, 그것이 외상이어도 내상이어도 상관없이 신체에 그 어떤 영향이든 미치지 않도록 하며, 감각은 일순 둔하게 만들어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하거나 소음 차단, 추위 혹은 더위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등 외부의 모든 자극으로부터 대상을 격리한다. 꼭 당장의 부상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흉터나 점 등 신체에 남은 흔적 또한 봉인할 수 있다.
이 능력의 실제적인 흔적은 신체 어딘가에 새겨진 황금빛 족쇄 문양으로, 보통은 부상의 위치나 감각을 느끼는 부위 부근에 나타난다. 상처의 경우 해당 부상이 봉인을 통해 나을 때까지, 감각은 능력으로 이어져 있는 순간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다만 부상 봉인으로 인해 생긴 문양은 시전자와 대상자 둘 모두에게 나타나며, 이어진 둘의 회복력을 공유하기 때문에 실제 부상보다 더 빠르게 사라진다. 공유하는 것은 회복력뿐이므로 실제 부상이 없는 시전자는 문양의 위치를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한 번에 한 명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아니고, 능력 사용을 꺼리지도 않으므로 그의 옷 아래엔 여러 개의 황금빛 문양이 자리 잡고 있을 때가 잦다.
이어진 대상끼리 공유하는 것은 회복력뿐이나, 봉인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만큼 시전자는 일방적으로 대상의 상태를 일부 파악할 수 있다. 부상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혹은 어떤 이유로 생겼는지 등의 정보가 있으나 먼저 발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먼저 어떤 것을 알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부작용 :
봉인하려는 부상의 크기가 클수록, 혹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무형에 가까운 것일수록 부작용의 강도가 강해진다. 단순한 능력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혈액 순환이 느려지는 것으로 발생하는 신체 저림 정도로 시작해 심해지면 호흡 곤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해당 능력으로 시전자의 신체에 묶어둔 족쇄가 많을수록 흔적이 남은 신체 분위의 내구성이 약해지며 쉽사리 살이 갈라지거나 벗겨지는 등의 가벼운 부작용을 시작으로 가벼운 부딪힘에 손발톱이 빠지는 것부터, 골절, 그에 더해 근육 문제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부작용은 봉인할 수 없기에 회복은 시전자 본인의 회복력에 달렸다. 때문에 보통은 공유하고 있는 족쇄를 몸 전체에 퍼트려두지만, 일정 수를 넘는다면 도리어 한 곳으로 몰아두기도 한다.
지금은 쓸 수 없다. 메모리의 권능은 아래에 가라앉아있고, 그를 깨울 생각조차 아이는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이가 아니더라도 낙원은 모든 것을 더 나은 길로 이끌 텐데….
그러나 어딜 가도 여분의 끈 하나 이상을 챙기고 마는 것은 별수 없는 잔재일지도 모르겠다.
스테이터스
공격력 : ◇◇◇◇◇│◇◇◇◇◇│0
내구도 : ◇◇◇◇◇│◇◇◇◇◇│0
행운 : ◆◆◆◆◆│◇◇◇◇◇ 5
회복력 : ◆◆◆◆◆│◆◆◆◆◆│10
내성/정화력 : ◆◆◆◆◆ 5
포지션
힐러
성격
차분한 청자 / 성실한 이타 / 흐릿한 잔상
무엇도 잃지 않을 수 있는 세상에서, 또한 평온만이 있는 세상에서 자란 아이는 봄날만 이어지는 곳에서 자란 만큼, 딱 변하지 않는 날씨 정도로 얌전했다. 적당한 다정과 순수, 누군가를 쉽게 의심하지 않고, 그만큼 잘 따르는.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선뜻 다가가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며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히 한 발을 내딛는 걸음은 고요했다. 다른 이에게 반대 의견을 강경히 주장하는 것은 잘하지 못했고, 조용히 옆에 앉아 이야기 듣는 것에는 능했으니, 아이는 대체로 청자였다. 그래도 모든 일에 순응하기보단 조심스럽게나마 질문을 던지곤 했다. 물론 의심하지 못하니 금방 수긍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이 그 아무리 하잘것없어도, 아이는 무엇이든 성실히 임했다. 부모님과 마을 일을 돕고, 누군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어디든 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그러니 매일 아이가 할 일을 찾아다녔다. 선생님들을 돕고, 성당 사제님들과 인사를 하며 예배당을 정리하거나, 도서관에서 잘못 꽂힌 책이 있으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책장 사이를 오갔다. 그 모든 것은 이타에서 비롯되었다. 열정적인 학구열이나 드높은 탐구심을 품진 못했음에도, 수업에 늦지 않게 제시간에 참여하며, 과제를 성실히 하는 사유 역시 자신의 발전보단 그를 준비해 주신 선생님들의 노력에 보답하고자, 라 말할 정도로 타인을 기준에 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듯 타인을 위하여 움직이나, 아이는 누군가의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존재감이 흐릿한 탓인지, 그런 모든 이타를 내세우지 않으며 조용히 지내는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군가 어렴풋하게 그런 아이가 있었던가, 싶은 의문을 떠올리면 이따금 아이는 웃었다. 아이가 행한 모든 것이 명확한 주체를 남기지 못하고 흐릿하게 지워져 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다음에 할 일을 위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기타
아디넬 센솔
부모님과 이란성 쌍둥이, 그리고 5살 터울 남동생의 5인 가족. 그린 듯이 화목한 가족으로 제 1섬 디오니시아 남쪽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감자가 주요한 작물이며, 아이가 조향을 배운 이후로는 한쪽에 오롯하게 그를 위한 작은 정원을 만들어 주었다.
왼손잡이. 왼장갑에 향이 더 많이 스밀 때가 많아 휴대하는 장갑도 왼쪽이 더 많다. 그 탓에 이따금 양손의 장갑이 다른 모양새일 때도 있다.
말투. 조용하고 느긋한, 그만큼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발음한다. 누구에게나 전하는 존대는 부드러우며, 타인을 지칭할 땐 기본적으로 풀네임에 ‘님’을 붙여 부르는 편이다. 그 모든 것을 합쳐 당신이라는 사유지만, 상대가 원한다면 쉽게 바꾼다. 요청이 없다면 애칭은 부르지도, 짓지도 않는다. 반대로 다른 이들이 본인을 부르는 것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몇 명은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음에도 풀네임이 아닌 형태로 부르곤 한다.
놀라 제대로 다시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이 좋다면…, 그렇다면 상관 없는 것일까.
신앙심. 그 어떤 다툼도, 상실과 슬픔도 자리하지 못할 세계의 ‘신’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 그리하여 이 평화가 유지되고 있으므로, 마땅히.
소식. 부족함 없이 자라났으나, 태생적으로 그리 많이 먹지 못한다.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으나, 많이 먹으면 쉽게 체하고 만다.
건강.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정도는 어릴 때가 더 심했던 것인지 침대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했던 날도 있었던 듯하나, 명확하지는 않다. 그런 수순으로 체력 역시 약한 편.
안대. 혹은 이따금 베일. 길게 자란 앞머리 안쪽에 자리한 것은 언제고 눈을 가렸다. 아카데미 입학 때부터 항상 있었고, 어렴풋한 과거 중 모든 떠오르는 순간도 언제나 아이의 눈가에 있었다. 그러니 그 시작점을 아이마저 알지 못한다.
점자.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순간 매끄럽게 읽는 것이 가능하진 않아 점자책으로 읽을 때도 있다. 물론 보조 도구를 통해 읽을 수도 있지만, 급하지 않다면 점자책을 먼저 고르는 편. 특히 도서관에서는 보조 도구를 사용하는 것보단 점자책을 읽을 때가 더 많다.
보조 도구. 입학 이후로 항상 오른쪽 귀에 달린 도구는 안대로 인해 가려진 시야에 대한 보조를 주로 맡고 있다. 길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피하기, 모르는 곳을 가기 위한 길 찾기, 글 읽기 등 생활 전반에 도움을 받고 있다. 자동화 인형 또한 추천을 받았지만, 그보단 더 가벼운 쪽을 골랐다고 한다.
시선. 다른 이들에 비해 볼 수 있는 것이 적지만, 이야기를 들을 때나, 새로운 무언가를 느낄 때면 자유로이 움직였다. 밖을 자유로이 돌아다니기 힘들어도 안에서만 고립되고자 하지 않았으니, 아이는 창가를 좋아했다.
호불호
좋다고 하는 것은 넘치나, 반대로 싫다 꼽는 것이 드물다. 관련한 질문을 하면 정말 그런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긴 하나, 역시나 모르겠다는 듯 웃으며 화제를 뭉개니 실제로 싫어하는 것이 없는지, 아니면 감추는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눈을 드러내는 것만은 그 순한 낯으로 거절한다. 이에 대한 이유 또한 명확히 말하는 법이 없으니, 이것이 아마 거의 유일하게 꼽는 아이의 명확한 선일 터였다.
조향
아카데미 입학 이전부터 마을 성당에서 미사에 사용될 향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입학한 후에도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기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으며, 아카데미로 돌아올 때면 정원의 꽃을 한 아름 가져와 그걸로 뭔가를 만들기도 했다. 이따금 아카데미 학생들의 요청을 받기도 했으니, 분명히 아이의 취미이자 특기로 꼽을 수 있는 분야다. 이렇게 익숙하고, 자주 접하는 덕인지 타인을 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기억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후각이 예민했다고 하지만, 굳이 꼽는 것이 후각일 뿐 다른 감각들 또한 보통 사람들에 비해 예민하다.
날에 따라 향수나 향낭을 달리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유향(Frankincense)이 기본이다. 기숙사에 관련한 도구들을 두고 있으므로, 방에서는 항상 다양한, 또한 매일 달라지는 향이 난다. 창가에서 소담히 자라고 있는 화분들도 있으니 장갑 끝은 흙이 묻어 더러워지거나, 다른 향에 폭 젖어있을 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의 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소매나 머리칼에 희미하게 묻어나는 바람 향기 탓일 것이다. 창을 열고 자, 다음 날 잔기침을 하는 모습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도 하다.
아카데미 에우프라시아
12살에 혼자 입학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성실함이 사유인지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나, 손에 꼽을 정도는 아니다. 모든 과목이 좋다고 말하지만, 굳이 꼽으라면 신학 수업. 그 때문에 도서관에서 추가 신학 수업을 신청해 듣기도 했다. 반대로 천문학은 노력에 비해 충분한 점수는 받지 못하는 편인데, 이론은 최선을 다해 이해해 보려 하지만 어떻게 상상해도 하늘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유.
특별히 교칙을 어기거나 사고를 치지 않으나, 눈에 띄는 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 평판은 적당히 조용한 아이이거나 그런 아이가 있던가, 싶은 의문 정도, 혹은 조향을 하는 아이, 즘의 특징 하나만 남는다. 그러니 세례식에 선발되었을 때 아이가 누구인지를 의아하게 여긴 이들은 적지 않았다. 당장 스스로도 명단 오류를 가능성으로 제시했으니 더더욱.
수업과 기숙사 외 주로 다니는 곳은 성당, 도서관, 광장. 조금 더 자세하게는 성당의 고해소, 도서관의 퇴창, 광장 어귀의 그늘진 벤치로 따로 거창한 무언가를 하진 않는다. 그저 그 모든 곳이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더 편하다는 사유. 그 외로는 종종 온실에 가 향료에 쓸 꽃이나 식물, 수지 등을 얻어오기도 한다. 말고는 언젠가 칸시아닐라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성당까지 혼자 올라가 보는 것이 소소한 목표라지만 지금껏 성공한 적은 없다. 중턱에 가기 전부터 지치고 마니, 별수 없는 일이지만.
입학 후 1년간은 적어도 이 주에 한 번 이상은 집에 돌아가 가족을 만났으나, 2학년이 된 후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세례식에 선발되기 전,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간 것은 3개월 전. 다만 편지는 여전히 주고받고 있으며, 편지가 도착하는 날이면 평소보다 분위기가 말랑하다.
쌍둥이 자매인 델리스 센솔은 14살인 올해 입학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시기가 나뉘었다고 하며 학년 초에는 둘이 붙어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지금은 적당히 오가며 만나는 정도.
관계
기드온 : 식사 도우미이자 잠 많은 손님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하기도 했지만,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므로, 아디넬은 지내던 마을보다는 한참 더 발전한 기숙사 기계에 바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니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계에 곤란하던 차, 기계는 두드리면 된다는 말과 함께 들린 몇 번의 쿵 소리와 결국 고장 났다는 안내를 듣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후, 식당에서 다시 만난 이는 그 일로 미안하다며 음식을 잔뜩 쌓아주었고, 결코 먹을 수 없는 양에 급히 소매를 잡아 같이 먹자고 이야기한 것이 제대로 된 시작 정도.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 앞에 무력한 아이와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사용하는 데에 약한 이, 남기지 않고 비운 접시와 조촐하게 열리는 낭독회나 낮잠 시간을 통해 나름대로 약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첫 만남이 나름 강하게 남았는지, 그때와 비슷하게 기계에서 큰 소리가 나면 팔에 매달리고 만다. 그러다 훅 올라가는 감각에 놀라 딸꾹질할 때도 있지만, 처음보다는 익숙해진 모양.
“재미있는 책은 잘 모르는데…, 하지만 지금은 저쪽에 사람이 없어요.”
나흐트 슈흐 : 미지의 설명자
아디넬에게 매주 있는 천문학 수업은 궁금하지만 그만큼 곤란한 수업이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아도 온 세상은 까만 도화지와 다름없고, 거기서 반짝인다는 것들은 도저히 그릴 수가 없는 것들뿐이었다. 겨우 천문학에 사용되는 도구들이나 이론, 역사를 외웠지만 그걸로는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시간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는 달이나, 흘러가는 별, 아니면 별자리, 그 모든 것들은 미지로만 남았다.
그런 수업에서 생긴 특별한 일은 역시, 아이의 의아한 궁금증에 어떻게든 열심히 설명해 주려는 친절한 학생을 만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델리스와 같은 학년이라, 뒷모습을 보고 착각했다지만, 그런 계기보단 그의 상냥함이 더 기억에 남았다. 이후로도 천문학 수업 시간이 되면 도움을 받고는 있으나, 여전히 성적은 좋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이 뭔지를 모르겠는데 어떡하면 좋지.”
디엘런 에르카이츠 : 되갚을 길 없는 선생님이면서 제자…?
아카데미 입학 후, 아디넬에게 곤란한 상황은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낙원에 살아갈 이들을 위해 철저히 짜인 교육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일이 될 것이다. 마을 성당에서 아이들을 모아 하던 작은 학교와는 너무도 다른 수업에 홀로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며 골몰하던 아이를 도와준 것은 상냥한 상급생이었다. 오롯하게 성실함만으로 수업과 과제를 헤쳐 나가는 아이를 도와준 이는 이후로도 관련한 점자 책을 찾아주거나, 사소한 요령을 알려주는 등 많은 부분을 도와주었다. 아이 나름의 성장을 기특하게 여기는 듯 해, 앞으로도 잘 배우는 제자가 되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조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질문의 화살표는 역방향이 되었다. 아디넬은 자신에게 오는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하다가, 주문이 들어올 때면 구경하고 싶다는 이와 함께 물품을 만들었다. 그걸 보고 혼자 하다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그건 역시 저나 물건에 문제가 있는 탓이겠지요?— 그러다 방문 앞에 소담히 놓여있던 성공작에는 아이도 기뻐했다. 여하튼 그렇게 상품을 만들다 하나쯤 더 만든 향초를 기숙사 문고리에 포장해 걸어두기도 한다. 그럼 보답이라고 간식이나 점자책이 얹어지는데, 역시 상냥한 탓이라 생각하고 있다. 점자를 배워볼 거라는 말에는 조금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도울 수 있으니 이런저런 책도 찾아 건넸다. 이리 받은 것이 많으니 애칭 부르는 걸 언제든 까먹지 말아야 할 텐데….
“디엘, 아니 엘님, 이거 한 번만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바쁘시면 괜찮은데….”
마르타 칸넬 : 변화무쌍한 불변자
도서관의 신학 수업관은 동급생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고, 거기엔 한 학년 위의, 이따금 아디넬이 광장에 나갈 때면 극장 근처에서 듣곤 했던 목소리의 주인공도 있었다. 처음은 딱 그 정도의 인지, 그리고 갑자기 생긴, 미묘하게 까슬거리는 어떤 알갱이.
어떤 단어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알갱이는 그 존재를 인지할 때면 절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울렁거림인지, 의문인지, 그도 아니면…. 하지만 아이는 무엇이든 혼자 머금고 삭히는 것에 능했다, 아마도. 이번만은 그리 잘 숨기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말도 붙이지 못하고 지나칠 때면 잠시 서성이던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이는 선뜻 속에 담은 것을 털어놓지 못해 괜히 광장에서 들었던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도 흔쾌히 그 짧은 기억을 현재로 끌어내 주었다. 그런 배려와 더불어 여전한 알갱이에, 이제는 언젠가가 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저번에는 음이 낮았는데, 이번엔 올라갔네요. 저는 둘 다 좋아요.”
셀레스트 쟈크 : 보지 못할 찰나의 기록자
아카데미 내부를 돌아다니다 홀로 떨어진 물건을 주운 아디넬은 그 주인을 찾으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끝에 동급생을 만났다. 이따금 공중에서 소리를 내는 기계를 가지고 다니는 이는 전해 듣기론 이외에도 잃어버리는 것도 많고, 찾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열심히 찾지 않는 것도 한몫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기만 하는 것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유도 있다니 다른 것은 몰라도 정리만큼은 아디넬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물건은 분류해도, ‘사진’은 아디넬이 정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다른 종이와 질감은 조금 다르지만, 글도 없고, 미약한 잉크향만 나니 그걸 ‘사진’이라 인식해도 그 내용은 알 수 없던 탓이다. 그래도 사진의 주인이 어떤 날에, 어디에서, 어쩌다 찍었는지를 열심히 설명해 주니 얇은 종이 위의 기억 정리도 곧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는 만큼 자신이 볼 수 없는 종이 위 찰나에 대한 의문을 고민하다 묻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지금은 방이 어수선해지면 정리를 돕고, 이따금 또 어디선가 떨어진 물건을 잘 가지고 있다가 돌려주고 있다. 그러다 답례로 뭔가를 받을 때도 있다고.
“그치만 종이에 잠깐의 세상이 들어간다니, 신기한 걸요.”